기록은 생각보다 조용하게, 그러나 깊이 있게 나를 바꿔놓았다. 처음에는 그저 하루를 정리하려는 마음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지만, 그 작은 습관이 내 삶의 여러 부분에 영향을 주기 시작했다.
예전에 나는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이었다. 누가 나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, 내가 왜 그날 기분이 나빴는지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지나칠 때가 많았다. 그런데 기록을 하면서부터는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게 되었고, 반복되는 패턴도 보이기 시작했다. “왜 나는 같은 상황에서 자주 화가 날까?”라는 질문을 던지게 되었고, 기록 속에서 그 이유를 찾아내기도 했다. 내 감정을 솔직하게 마주하는 일은 처음엔 어색했지만, 점점 나를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라는 걸 깨달았다.
또 하나, 기록은 내게 책임감을 심어주었다. 매일 아침 일어나서 오늘 할 일을 적고, 저녁에 그것을 다시 체크하는 일은 단순한 루틴 같지만, 나에게는 하루를 주도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. 그날그날의 감정, 감사했던 일, 그리고 사소한 깨달음까지 적어두면서 나는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고, 스스로를 좀 더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. ‘오늘은 이만큼 했구나’라는 기록 하나가 내일을 준비하게 만들었다.
기록은 또 ‘삶을 보는 눈’을 바꿔주었다. 이전에는 그냥 흘려보냈던 순간들—출근길 지하철에서 들은 대화, 길가의 꽃,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던 짧은 순간들—이 하나하나 인상 깊은 장면으로 남기 시작했다. 기록을 하면서부터 나는 더 많이 관찰하고, 더 자주 느끼고, 더 진심으로 하루를 살아가게 되었다.
어느 날 문득, 몇 달 전 기록을 다시 읽어보았다. 그 속에 담긴 내가 지나온 시간은 꽤 놀라웠다. 별일 없던 날에도 나는 무엇인가를 느끼고 있었고, 소소한 것들에 감사하며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. 그 기록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사실은 꽤 감동적이었다.
아마도 기록은 거창한 목표를 이루게 해주지는 않는다. 하지만 분명한 건, 매일의 나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힘이 있다는 것이다. 글 속에서 나는 나와 마주하고, 때로는 위로를 받고, 때로는 다짐을 새기며,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