기록이 우울감을 덜어준 경험

몇 년 전, 이유 없이 무기력한 날들이 이어진 경험이 있다. 친구들을 만나도 공허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고, 좋아하던 취미에도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. 하루하루가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었다. 정신과 상담까지는 망설여졌고, 뭔가 나 스스로 해볼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‘기록’을 시작하게 됐다.

처음엔 그날 먹은 음식이나 날씨처럼 사소한 것들을 적었다. “오늘은 흐림, 기분은 쏘쏘.” 그렇게 하루에 한 줄이라도 남기는 걸 목표로 삼았다. 그런데 이상하게도, 계속 쓰다 보니 내 마음이 조금씩 열리기 시작했다. 감정에 이름을 붙이고 나면, 막연한 불안도 구체적인 생각으로 바뀌었고 그게 위로처럼 느껴졌다.

특히 우울했던 날은 글이 길어졌다. ‘나는 왜 이렇게 사는 걸까’로 시작해 ‘그래도 이건 내가 잘했다’는 문장으로 끝나는 날도 있었다. 내 글이 누군가에게 보여지는 게 아니었기에 솔직할 수 있었고, 때로는 울면서 글을 쓰기도 했다. 하지만 이상하게도, 그렇게 다 쓰고 나면 마음이 조금은 정리됐다. ‘기록하는 나’가 ‘감정에 휘둘리는 나’를 붙잡아주는 느낌이랄까.

기록은 내 감정의 정리장치가 되어주었고, 내가 나를 이해할 수 있게 만들어주었다. 어쩌면 누구에게 털어놓기엔 부끄러운 감정들도, 글 속에서는 내 편이 되어주었다. 시간이 지나 예전 글을 다시 읽어보면 그땐 몰랐던 내 속마음이 보이고, 또 그때의 나를 다정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된다.

물론, 기록이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았다. 하지만 우울함에 짓눌리지 않도록 내 마음을 ‘내려놓는 방법’을 알려주었다. 지금도 여전히 감정이 복잡한 날이면, 나는 다시 펜을 들고 혹은 키보드를 두드린다. 나를 위한 가장 솔직한 대화, 그게 기록이었고, 그 기록 덕분에 나는 조금 더 건강해질 수 있었다.

내 경험처럼 기록은 우울감을 덜어주기도 한다. 어릴 땐 우울하면 친구들을 만나고, 밖에서 술을 마시며 잠시 잊으려는 노력을 했던 것 같다. 결국 이런 일탈은 더 큰 우울로 찾아옴을 깨닫게 되었다. 우울할 땐 더 조용하게 혼자 감정을 들여다보고, 기록하는 것이 하나의 해소 방법이 될 수 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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